엑셀로 장보기 예산표를 만들어봤더니 돈 새는 구멍이 보였다

얼마 전 장을 보고 영수증을 펼쳐봤는데, 분명 필요한 것만 샀다고 생각했는데도 금액이 꽤 크게 나왔다. 우유, 계란, 두부, 과일처럼 늘 사는 것들이라 별생각 없이 담았는데 계산대 앞에서는 매번 비슷하게 놀란다. 그래서 이번엔 그냥 감으로 넘기지 않고 엑셀에 적어보기로 했다. 거창한 가계부 말고, 딱 장보기 예산만 보는 작은 표를 만들어본 것이다.
사실 엑셀은 회사에서만 쓰는 프로그램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함수가 나오고, 표가 나오고, 단축키가 나오면 괜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생활비처럼 반복되는 숫자를 다룰 때는 오히려 종이 메모보다 훨씬 편했다. 특히 내가 어디서 돈을 더 쓰는지 눈으로 보이는 게 컸다.
처음엔 품목, 예상금액, 실제금액만 넣었다
처음 만든 표는 정말 단순했다. A열에는 품목, B열에는 예상금액, C열에는 실제금액, D열에는 차이를 넣었다. 예를 들면 계란은 예상 7,000원, 실제 8,900원. 사과는 예상 10,000원, 실제 13,500원처럼 적었다. 장보기 전에는 대충 이 정도겠지 싶었던 숫자와 실제 계산된 금액을 나란히 놓으니 생각보다 차이가 선명했다.
D열에는 =C2-B2처럼 간단한 수식을 넣었다. 실제금액에서 예상금액을 빼면 초과한 금액이 바로 나온다. 이 정도 함수는 외울 필요도 거의 없다. 한 번 넣고 아래로 쭉 끌어내리면 나머지 줄에도 자동으로 적용된다.
- 품목: 우유, 계란, 과일, 고기처럼 산 물건 이름
- 예상금액: 장보기 전에 생각한 가격
- 실제금액: 영수증에 찍힌 가격
- 차이: 실제금액에서 예상금액을 뺀 값
이렇게만 해도 꽤 많은 게 보였다. 나는 과일과 간식에서 늘 예상보다 많이 쓰고 있었고, 생필품은 오히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느낌으로는 세제나 휴지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매번 과일 코너에서 예산이 흔들리고 있었다.
색을 넣으니 숫자가 훨씬 빨리 읽혔다
엑셀에서 마음에 들었던 기능은 조건부 서식이었다. 이름은 조금 딱딱하지만, 쉽게 말하면 특정 조건에 맞는 셀에 자동으로 색을 칠해주는 기능이다. 나는 차이 금액이 0원보다 크면 연한 빨간색, 0원보다 작으면 연한 초록색이 나오게 했다.
예를 들어 예상보다 2,000원 더 쓴 품목은 빨간색으로 보이고, 1,000원 덜 쓴 품목은 초록색으로 보인다. 숫자를 하나하나 읽지 않아도 빨간색이 몰린 부분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장보기 후 영수증을 보며 표를 채우는 시간이 5분 정도였는데, 그 5분 덕분에 다음번 장보기 목록이 조금 달라졌다.
솔직히 처음에는 색까지 넣는 게 귀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 설정해두면 이후에는 자동이라 손댈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모바일 엑셀 앱으로 봐도 색이 그대로 보여서, 장 보러 가기 전에 지난번 표를 확인하기 좋았다.
SUM 함수 하나로 총액 비교가 끝났다
장보기 예산표에서 가장 자주 쓴 함수는 SUM이었다. 예상금액 합계는 =SUM(B2:B15), 실제금액 합계는 =SUM(C2:C15)처럼 넣었다. 품목이 14개라면 B2부터 B15까지 더한다는 뜻이다.
한 번은 예상 총액을 85,000원으로 잡았는데 실제로는 103,400원이 나왔다. 차이는 18,400원. 그냥 영수증만 봤다면 “오늘 좀 많이 나왔네” 하고 넘겼을 텐데, 표에 넣으니 어느 품목에서 얼마나 밀렸는지 바로 보였다. 그날은 과일 6,500원 초과, 냉동식품 4,800원 초과, 간식 3,900원 초과가 컸다.
이 숫자를 보고 다음 장보기 때는 간식을 목록에서 아예 빼지는 않았다. 대신 개수를 정했다. 과자는 2봉지만, 냉동식품은 1개만. 엑셀의 장점은 무조건 아끼라고 압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게 숫자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필터를 걸면 반복되는 지출 습관이 보인다
몇 주 정도 표를 쌓아보니 품목이 많아져서 보기 복잡해졌다. 이때 필터 기능을 켰다. 표의 첫 줄을 선택하고 필터를 적용하면, 품목이나 카테고리별로 골라볼 수 있다. 나는 카테고리 열을 하나 더 만들어서 식재료, 간식, 생필품, 즉석식품으로 나눴다.
이렇게 해보니 예상 밖의 패턴이 나왔다. 식재료는 매번 필요한 만큼 사는 편이라 큰 변동이 없었는데, 즉석식품은 할인 문구를 보면 자꾸 추가로 담고 있었다. “2개 사면 할인”이라는 말이 싸게 느껴졌지만, 원래 살 계획이 없던 것까지 사면 결국 총액은 올라갔다.
- 식재료: 쌀, 채소, 고기, 두부, 계란
- 간식: 과자, 초콜릿, 음료, 아이스크림
- 생필품: 휴지, 세제, 샴푸, 치약
- 즉석식품: 냉동만두, 볶음밥, 컵밥, 밀키트
필터로 카테고리별 금액을 보니 내 장보기 습관이 조금 민망할 정도로 드러났다. 나는 필요한 물건을 많이 사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편한 물건을 자주 추가하고 있었다.
엑셀을 어렵게 쓰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번에 직접 써보면서 느낀 건, 엑셀은 복잡한 보고서용으로만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품목을 적고, 금액을 넣고, 합계를 보는 정도만으로도 생활 속 작은 문제에는 꽤 강했다. 특히 장보기처럼 반복되고 숫자가 남는 일에는 잘 맞았다.
처음부터 완벽한 양식을 만들려고 하면 금방 지친다. 나는 첫 주에는 품목과 금액만 적었고, 둘째 주에 차이 열을 넣었고, 그다음에 카테고리와 색을 추가했다. 이렇게 조금씩 붙이는 방식이 부담이 적었다.
엑셀을 잘한다는 게 꼭 어려운 함수를 많이 아는 건 아닌 것 같다. 내 생활에서 반복되는 일을 표로 바꿔보고, 그 숫자를 보고 다음 행동을 조금 바꾸는 것.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장보기 영수증을 그냥 버리기 전에 한 번 적어보니, 돈이 어디서 새는지 생각보다 솔직하게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