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귀를 모아봤더니, 위로보다 오래 남은 문장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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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귀를 모아봤더니, 위로보다 오래 남은 문장들이 있었다

얼마 전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가 조금 민망해졌다. 예전에 저장해 둔 좋은 글귀가 꽤 많았는데, 막상 다시 읽어보니 지금의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문장도 많았다. 그때는 분명 캡처까지 해둘 만큼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며칠 동안 내가 실제로 오래 붙잡고 있는 문장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다시 골라봤다.

좋은 글귀라고 해서 꼭 거창한 명언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짧고 담백한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힘들 때 읽으면 바로 눈물이 나는 문장보다, 다음 날 아침에도 괜히 생각나는 문장이 진짜 쓸모 있었다.

캡처만 쌓이는 글귀와 오래 남는 글귀는 달랐다

예전에는 예쁜 배경에 올라온 문장을 보면 일단 저장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같은 말도 많이 모았다. 물론 그런 문장이 필요한 날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 자주 보면 힘이 조금 빠졌다. 이미 지친 사람에게 “다 잘될 거야”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근거 없는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대로 오래 남은 글귀는 현실을 아주 조금 비틀어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오늘의 기분이 내 인생 전체의 날씨는 아니다.
  • 느린 건 멈춘 것과 다르다.
  • 나를 덜 미워하는 쪽으로 하루를 써도 된다.
  • 잘 버틴 날도 성과로 쳐야 한다.

이런 문장은 대단한 해결책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마음이 과열됐을 때 온도를 조금 낮춰준다. 좋은 글귀의 역할이 꼭 인생을 바꾸는 데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무너지는 방향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붙잡아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좋은 글귀를 고를 때 내가 보는 3가지

직접 골라보니 기준이 생겼다. 첫째, 너무 완벽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은 걸렀다. “매일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멋있지만, 퇴근하고 라면 물 올리는 사람에게는 조금 버겁다. 좋은 문장은 멋진 사람을 흉내 내게 하기보다 지금의 나를 덜 초라하게 만들어야 했다.

둘째,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가 중요했다. 처음엔 강하게 꽂히는데 10분 뒤 기억이 안 나는 문장이 있다. 반대로 별것 아닌데 설거지하다가 다시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내 기준에서는 후자가 더 좋은 글귀였다.

셋째, 너무 단정적인 문장은 조심했다. “상처는 반드시 성장으로 돌아온다” 같은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사실 모든 상처가 성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어떤 상처는 그냥 오래 아프다. 그래서 나는 “상처가 남아도 다른 하루를 살 수는 있다”처럼 여지를 남기는 문장이 더 편했다.

상황별로 다르게 쓰면 더 잘 맞았다

좋은 글귀도 약처럼 상황에 맞아야 했다. 마음이 지친 날에는 힘내라는 말보다 쉬어도 된다는 말이 낫다. 반대로 자꾸 미루는 날에는 아주 작은 행동을 건드리는 문장이 효과가 있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 안 풀리는 날에도 쌓이는 건 있다.
  • 오늘 망친 일 하나가 나 전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 방향을 잃은 것과 늦어진 것은 다르다.

이런 문장은 실패를 너무 크게 부풀리지 않게 해준다. 특히 “나 전체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꽤 자주 떠올랐다. 일이 꼬이면 이상하게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튀는데, 그때 선을 그어주는 느낌이 있다.

관계가 피곤할 때

  • 모든 오해를 내가 다 풀 필요는 없다.
  •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나를 너무 많이 쓰지 말자.
  • 거리를 두는 것도 관계를 망치는 행동만은 아니다.

관계에 관한 글귀는 특히 조심스럽다. 너무 차갑게 말하면 회피처럼 느껴지고, 너무 따뜻하게 말하면 참고 버티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나는 균형 있는 문장이 좋았다.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내 에너지를 전부 내놓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의 문장 말이다.

시작이 어려울 때

  • 작게 시작한 일은 작아서 계속될 수 있다.
  • 완벽한 준비보다 10분의 움직임이 더 빠르다.
  •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면 시작이 제일 무거워진다.

이건 실제로 써먹기 좋았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날, 나는 “10분만”이라고 생각하면 몸이 조금 움직였다. 독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권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운데, 세 쪽만 읽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가능해졌다. 좋은 글귀가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너무 크지 않아야 했다.

직접 써보니 남의 문장보다 내 문장이 더 오래 갔다

좋은 글귀를 찾다가 의외로 괜찮았던 방법은 직접 한 줄씩 써보는 거였다. 처음엔 어색했다. 명언처럼 멋있게 쓰려고 하니 손이 멈췄다. 그런데 기준을 낮추고 “오늘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정도로 쓰니 훨씬 쉬웠다.

예를 들어 피곤한 날에는 “나는 지금 게으른 게 아니라 방전된 상태다”라고 썼다. 별문장 아닌데 그날은 꽤 도움이 됐다. 해야 할 일을 못 했다는 죄책감이 조금 줄었다. 어느 날은 “답장을 늦게 한다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적었는데, 이것도 인간관계에서 괜한 불안을 줄이는 데 쓸모가 있었다.

직접 쓴 문장의 장점은 내 상황을 정확히 안다는 점이다. 유명한 글귀는 많은 사람에게 맞게 넓게 쓰여 있다. 반면 내가 쓴 문장은 그날의 온도, 피곤함, 찜찜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 투박해도 더 잘 꽂힌다.

좋은 글귀를 저장하는 나만의 방식

요즘은 무작정 캡처하지 않고 메모장에 세 칸으로 나눠 둔다. “지친 날”, “움직여야 하는 날”, “관계가 버거운 날” 이렇게 분류해두니 다시 찾기가 쉬웠다. 예전처럼 사진첩에 섞어두면 결국 안 보게 됐다.

그리고 문장 옆에 저장한 날짜를 적는다. 신기하게도 3개월 뒤 다시 읽으면 그 문장이 아직 유효한지 보인다. 여전히 마음에 남으면 진짜 내 문장에 가까운 거고, 아무 느낌이 없으면 그때 잠깐 필요했던 문장이다. 둘 다 괜찮다. 모든 좋은 글귀가 평생 갈 필요는 없으니까.

좋은 글귀를 모으는 일은 결국 멋진 문장을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말에 덜 흔들리고 다시 움직이는지 알아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요즘은 예쁜 말보다 정확한 말이 좋다. 너무 과하게 위로하지 않고, 너무 쉽게 다그치지도 않는 문장. 그런 한 줄이 가끔은 긴 조언보다 오래 옆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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