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로 한 달 지출을 직접 적어봤더니 생각보다 새는 돈이 보였다

얼마 전 카드 명세서를 보다가 잠깐 멈췄다. 분명히 큰돈을 쓴 기억은 없는데, 한 달 지출이 예상보다 18만 원쯤 더 나와 있었다. 배달도 몇 번 줄였고, 커피도 예전보다 덜 마신 것 같은데 숫자는 솔직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엑셀을 켜고 내 소비를 직접 적어보기로 했다.
사실 엑셀이라고 하면 회사에서 쓰는 복잡한 표, 함수, 피벗테이블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생활비 확인 정도는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해본 방식은 딱 네 가지 칸만 만드는 것이었다. 날짜, 사용처, 금액, 분류. 이 정도만 있어도 생각보다 많은 게 보였다.
처음엔 그냥 카드 내역을 베껴 넣었다
처음부터 멋진 가계부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카드 앱에서 최근 한 달 내역을 열어두고 엑셀에 하나씩 옮겼다. 날짜는 6월 1일, 6월 2일처럼 적고, 사용처에는 편의점, 카페, 배달앱, 마트처럼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이름만 넣었다. 금액은 숫자로만 적었다. 4,500원이라고 쓰지 않고 4500으로 넣어야 나중에 계산이 편했다.
분류는 너무 세분화하지 않았다. 식비, 카페, 교통, 생활용품, 구독, 기타 정도로 나눴다. 예전에 항목을 열 개 넘게 나눴다가 며칠 만에 귀찮아진 적이 있어서 이번엔 일부러 대충 나눴다. 생활 도구는 오래 쓰는 게 중요하지, 처음부터 완벽한 게 중요하진 않았다.
- 날짜: 돈을 쓴 날
- 사용처: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이름
- 금액: 숫자만 입력
- 분류: 식비, 카페, 교통처럼 큰 묶음
이렇게 20분 정도 입력하니 한 달치 내역이 94줄 정도 나왔다. 생각보다 줄 수가 많아서 좀 놀랐다. 하루에 한두 번만 써도 한 달이면 꽤 긴 표가 된다.
합계보다 먼저 봐야 했던 건 횟수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총액이 궁금했다. 엑셀 아래쪽에 =SUM(C2:C95)를 넣으니 전체 지출이 바로 나왔다. 여기서 한 번 놀라고, 그다음에는 분류별로 금액을 더해봤다. 어려운 기능을 쓰지 않고 필터만 걸어도 충분했다. 분류 칸에 필터를 켜고 카페만 선택한 뒤 금액을 더했다.
그런데 진짜 눈에 들어온 건 금액보다 횟수였다. 카페 지출이 한 달에 17번이었다. 한 번에 4,000원에서 6,000원 정도라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합쳐보니 82,300원이었다. 배달은 6번이었고 총 126,000원이었다. 횟수는 적어 보였지만 한 번 단가가 높았다.
이 차이가 꽤 중요했다. 카페는 습관처럼 새는 돈이고, 배달은 피곤한 날 한 번에 크게 나가는 돈이었다. 둘 다 줄인다고만 생각하면 막연한데, 엑셀에 숫자로 놓고 보니 접근법이 달라졌다. 카페는 주 2회 정도로 줄이는 게 현실적이고, 배달은 냉동식품이나 즉석밥 같은 대체재를 미리 사두는 쪽이 더 맞아 보였다.
색만 조금 넣어도 눈이 덜 피곤했다
엑셀을 오래 볼 때 제일 먼저 지치는 건 숫자가 빽빽하게 붙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분류별로 색을 아주 연하게 넣었다. 식비는 연한 노랑, 카페는 연한 초록, 교통은 연한 파랑 정도였다. 진한 색을 쓰면 오히려 눈이 피곤해서 배경색은 최대한 흐리게 했다.
그리고 10,000원 이상 지출은 굵게 표시했다. 조건부 서식을 쓰면 자동으로 되지만, 귀찮으면 직접 굵게 눌러도 된다. 내가 해보니 한 달에 1만 원 이상 쓴 횟수는 23번이었다. 이 숫자가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작은 지출만 문제가 아니라, 만 원 넘는 지출이 얼마나 자주 생기는지도 봐야 했다.
특히 편의점 지출이 의외였다. 한 번에 3,000원, 5,000원이라 기억에도 잘 안 남는데 한 달 합계가 64,800원이었다. 대부분 생수, 과자, 간단한 간식이었다. 마트에서 미리 사두면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함수는 딱 세 개만 써도 충분했다
엑셀을 어렵게 만드는 건 함수 이름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생활비 확인용으로는 세 개면 충분했다. SUM, AVERAGE, COUNT. 합계, 평균, 개수다. 이 세 가지만 알아도 내 소비 습관을 보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
- SUM: 한 달에 총 얼마를 썼는지 확인
- AVERAGE: 한 번 쓸 때 평균 금액 확인
- COUNT: 지출 횟수 확인
예를 들어 배달 금액 6개를 평균 내보니 21,000원이었다. 카페는 평균 4,841원이었다. 숫자만 보면 카페가 작아 보이지만, 횟수가 많아서 합계가 커졌다. 반대로 배달은 횟수는 적지만 한 번에 지출이 커서 월말에 부담으로 느껴졌다.
근데 이걸 알게 됐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소비를 줄이게 되진 않았다. 솔직히 커피는 마시고 싶고, 피곤한 날 배달도 필요하다. 다만 어디서 줄이면 덜 스트레스받을지 감이 생겼다. 나는 카페를 완전히 끊는 대신 회사에 드립백을 두고, 배달은 주말 하루로 몰아보기로 했다.
엑셀 가계부가 의외로 괜찮았던 이유
가계부 앱도 써봤지만 나한테는 엑셀이 더 편한 부분이 있었다. 앱은 자동으로 분류해줘서 편하지만, 가끔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묶인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은 식비로 보고 싶은데, 앱에서는 생활로 들어가 있기도 했다. 엑셀은 손이 조금 가는 대신 내가 보는 기준을 직접 정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좋았던 건 수정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이번 달에는 지출만 봤고, 다음 달에는 고정비와 변동비를 나눠볼 수 있다. 월세, 통신비, 구독료처럼 매달 거의 같은 금액은 고정비로 빼고, 카페나 배달처럼 조절 가능한 돈만 따로 보면 더 현실적이다.
내 경우 고정비를 제외하고 조절 가능한 돈이 약 42만 원이었다. 여기서 10%만 줄여도 4만 원 정도다. 처음부터 20만 원 아끼겠다고 마음먹으면 금방 지치는데, 4만 원은 꽤 해볼 만했다. 커피 몇 번, 배달 두 번만 조절해도 닿는 숫자였기 때문이다.
엑셀은 대단한 프로그램처럼 느껴지지만, 생활 속에서는 그냥 숫자를 눈앞에 펼쳐주는 도구에 가까웠다.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적어보니 기억과 실제가 꽤 달랐다. 앞으로도 매일 꼼꼼하게 쓰진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카드 내역을 엑셀에 옮겨보는 정도는 계속할 생각이다. 그 정도만 해도 내 소비가 어디로 흐르는지 보는 데는 충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