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프 카쉬 사진을 찾아보다가 초상사진 보는 눈이 달라진 이야기

처음엔 처칠 사진 한 장 때문에 시작됐다
얼마 전 책 표지처럼 강렬한 흑백 인물사진을 찾다가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초상사진을 다시 보게 됐다. 입을 꾹 다물고, 눈썹은 살짝 찌푸리고, 얼굴에는 묘하게 버티는 힘이 느껴지는 그 사진이다. 사진 밑에 적힌 이름은 유서프 카쉬. 이름은 낯선데 사진은 이상하게 익숙했다.
찾아보니 유서프 카쉬는 1908년 태어나 2002년에 세상을 떠난 아르메니아계 캐나다 사진가다. 정치인, 예술가, 과학자, 배우 같은 20세기 인물들을 정말 많이 찍었다. 처칠, 헤밍웨이, 아인슈타인, 오드리 헵번, 피카소 같은 이름들이 줄줄이 나온다. 솔직히 처음엔 ‘유명한 사람을 많이 찍어서 유명한 사진가인가?’ 싶었다. 그런데 사진을 몇 장 더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카쉬의 사진은 얼굴을 예쁘게만 찍는 쪽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인물의 얼굴에서 오래 버틴 시간, 성격, 긴장감, 자존심 같은 걸 끌어내는 느낌이 강하다. 흑백이라 색 정보는 없는데, 이상하게 더 많은 정보가 보인다. 눈가의 주름, 손의 위치, 옷의 질감, 빛이 닿은 방향이 다 말처럼 느껴진다.
처칠 사진은 왜 그렇게 강하게 남았을까
유서프 카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진이 1941년에 찍은 처칠 초상이다. 당시 처칠은 캐나다 의회에서 연설한 뒤 사진을 찍게 됐고, 카쉬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처칠이 시가를 물고 있었는데 카쉬가 허락을 구한 뒤 시가를 빼냈고, 그 직후 처칠이 불편한 표정을 지은 순간을 찍었다는 이야기다.
이 일화가 재미있는 건 단순히 ‘표정을 화나게 만들어서 성공했다’는 식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진 속 처칠은 화난 사람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전쟁 시기의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맞물린다. 굳은 입매와 정면을 향한 시선이 당시 분위기와 딱 맞았다. 그래서 그 사진은 개인의 얼굴을 넘어 시대의 얼굴처럼 남았다.
생활 속 사진으로 생각해보면 꽤 실용적인 힌트가 있다. 인물사진은 꼭 웃어야만 좋은 사진이 되는 게 아니다. 가족사진이나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도 무조건 환하게 웃는 컷만 고르면 의외로 그 사람다운 느낌이 빠질 때가 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얼굴, 손을 자연스럽게 둔 자세, 말을 막 하려는 표정이 더 오래 남는 경우가 있다.
카쉬 사진에서 보이는 빛의 쓰임
카쉬의 사진을 여러 장 보면 빛이 굉장히 또렷하다. 얼굴 전체를 평평하게 밝히는 게 아니라, 한쪽에서 빛을 주고 반대쪽에는 그림자를 남긴다. 이 방식은 얼굴의 윤곽을 강하게 만든다. 특히 이마, 코, 광대, 손 같은 부분이 조각처럼 드러난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자동 보정이 워낙 좋아서 얼굴을 균일하게 밝혀준다. 편하긴 한데, 가끔은 얼굴이 너무 납작해 보인다. 카쉬 사진을 보고 나니 작은 차이가 보였다. 창가에서 옆빛을 받게 하고, 정면 조명은 살짝 줄이고, 배경은 너무 산만하지 않게 두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 정면 형광등 아래보다 창문 옆 45도 방향이 얼굴 윤곽을 살린다.
- 배경이 복잡하면 표정보다 물건이 먼저 보인다.
- 검은색이나 짙은색 옷은 흑백 사진에서 얼굴과 손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 인물의 손을 화면에 넣으면 성격이나 긴장감이 더 잘 드러난다.
물론 집에서 카쉬처럼 찍는 건 어렵다. 그는 대형 카메라와 조명, 암실 작업까지 다루던 전문 사진가였다. 그래도 원리는 생각보다 생활 사진에도 적용된다. 빛을 어디서 받는지, 얼굴의 어느 부분을 남길지, 배경을 얼마나 덜어낼지. 이 세 가지만 의식해도 사진이 훨씬 덜 우연처럼 나온다.
유명인을 찍었지만, 이름값에 기대지 않았다
카쉬가 찍은 인물 목록을 보면 거의 현대사 인명사전 같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유명한 사람이니까 멋있게 보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아인슈타인 사진은 천재라는 말보다 피곤함과 따뜻함이 먼저 보이고, 헤밍웨이 사진은 거칠고 단단한 이미지가 강하다. 오드리 헵번 사진은 화려한 배우라기보다 섬세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 차이가 꽤 흥미롭다. 카쉬는 인물을 장식처럼 찍지 않았다. 옷, 배경, 포즈를 과하게 꾸미기보다 그 사람이 가진 대표적인 분위기를 더 진하게 만든 쪽에 가깝다. 그래서 사진을 보고 나면 얼굴보다 인상 전체가 남는다. ‘이 사람은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식이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찍는 사진도 비슷하다. 아이 사진은 귀엽게만 찍으려 하면 금방 비슷해지고, 부모님 사진은 정면에서 웃는 사진만 남기면 그분들의 실제 분위기가 덜 담길 때가 있다. 일을 하던 손, 오래 앉아 있던 의자, 잠깐 고개를 돌린 표정 같은 것들이 오히려 사람을 더 잘 설명한다. 카쉬의 사진을 보면서 인물사진은 얼굴 수집이 아니라 분위기 기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진 습관에 바로 적용해본 것들
카쉬의 사진을 보고 나서 집에서 가족 사진을 몇 장 다시 찍어봤다. 특별한 장비는 없고 스마트폰뿐이었다. 대신 창문 옆에 앉게 하고, 방 조명은 껐다. 배경에 있던 빨래 건조대와 택배 상자는 치웠다. 웃어달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대화하다가 몇 장 눌렀다.
결과가 엄청난 작품처럼 나온 건 아니다. 근데 평소보다 훨씬 차분했다. 얼굴에 그림자가 생기니 표정이 더 깊어 보였고, 배경을 덜어내니 시선이 사람에게 바로 갔다. 특히 웃는 사진보다 잠깐 말을 듣고 있는 얼굴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표정이 애매하다’고 지웠을 사진인데, 이번엔 그 애매함이 오히려 진짜 같았다.
유서프 카쉬의 사진을 굳이 어렵게 감상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대단한 역사적 인물들을 찍은 사진가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더 단순하다. 사람을 찍을 때 너무 빨리 웃음을 요구하지 않는 것. 빛을 조금 옆으로 두는 것. 배경을 덜어내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이미 있는 분위기를 억지로 바꾸지 않는 것.
요즘은 사진을 많이 찍지만, 오래 보는 사진은 생각보다 적다. 카쉬의 초상사진이 오래 남는 이유는 멋진 얼굴을 만든 게 아니라, 한 사람을 잠깐 멈춰 세워 깊게 보이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음에 누군가를 찍을 때는 셔터를 빨리 누르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지 조금 더 기다려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