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직접 찾아보다가 알게 된 색감의 진짜 이야기

얼마 전 휴대폰 사진첩을 넘기다가 유난히 오래 멈춘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새파란 수영장, 반듯한 집, 물 위에 번지는 햇빛. 처음엔 그냥 예쁜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업에서 자주 보이는 분위기였다. 이상하게도 그의 그림은 어렵게 굴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꽤 집요하다. 색은 단순해 보이는데 시선은 오래 붙잡히고, 풍경은 밝은데 어딘가 조용한 긴장감이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 출신 화가로, 1937년에 태어났다. 회화, 사진 콜라주, 무대 디자인, 아이패드 드로잉까지 손댄 분야가 넓다. 미술사 책에서만 조용히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작업 방식을 바꿔온 작가라는 점이 흥미롭다. 생활 탐구식으로 말하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색을 잘 쓰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도 충분히 빠져들 만하다.
처음 보면 수영장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호크니 하면 많은 사람이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을 떠올린다. 대표작으로 자주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가 1967년작 ‘A Bigger Splash’다. 화면은 의외로 단순하다. 낮은 건물, 야자수, 수영장, 그리고 물보라.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방금 누군가 뛰어든 흔적만 남아 있다. 이게 생각보다 강하다. 움직임이 끝난 직후의 순간을 붙잡아 놓은 느낌이라서, 그림을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앞뒤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사실 수영장이라는 소재 자체는 가볍게 보일 수 있다. 휴양지, 햇빛, 여유 같은 단어가 바로 따라붙으니까. 그런데 호크니의 수영장은 광고 사진처럼 매끈하기만 하지는 않다. 물결을 표현한 선은 꽤 인공적이고, 건물의 면은 평평하다. 원근법도 우리가 익숙한 사진의 깊이감과는 다르다. 그래서 현실적인 장면인데도 살짝 무대처럼 보인다.
색이 밝은데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
호크니 그림을 처음 볼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색의 온도였다. 파랑, 분홍, 초록, 노랑이 선명하게 들어오는데 촌스럽게 튀지 않는다. 생활에서 비슷한 색 조합을 떠올려보면 수영장 타일, 오래된 리조트 벽, 햇빛 강한 날의 간판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색을 과하게 섞지 않고 넓은 면으로 둔다. 그래서 화면이 시끄럽지 않다.
색을 많이 쓰는 그림이 꼭 복잡한 건 아니라는 걸 호크니 작품이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배경의 하늘이 거의 단색에 가깝게 펼쳐지면, 관람자는 세부 묘사보다 전체 분위기를 먼저 받는다. 여기에 물결이나 인물의 자세 같은 작은 변화가 들어가면 시선이 움직인다. 이런 방식은 집 인테리어에도 꽤 참고가 된다. 벽지, 러그, 쿠션을 전부 화려하게 고르는 것보다 큰 면은 단순하게 두고 한두 곳에 선명한 색을 넣는 쪽이 훨씬 오래 보기 편하다.
- 큰 면은 단순한 색으로 두기
- 시선을 모을 곳에만 강한 색 넣기
- 사진처럼 정확한 깊이감보다 장면의 분위기부터 보기
사진을 따라 그린 사람 같지만, 사실은 사진을 의심한 사람
호크니를 찾아보다가 의외였던 부분은 그가 사진을 굉장히 오래 고민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 아니라, 사진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꽤 집요하게 파고든 사람에 가깝다. 1980년대에는 폴라로이드 여러 장을 이어 붙인 사진 콜라주 작업도 했다. 한 장의 사진이 한순간만 보여준다면, 여러 장을 붙인 이미지는 시간이 조금씩 다른 조각을 한 화면에 넣을 수 있다.
이 방식은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때 느끼는 어색함과도 닮았다. 분명 같은 장소인데 손이 조금 흔들리거나 사람이 움직이면 이미지가 살짝 비틀린다. 보통은 실패한 사진이라고 지우겠지만, 호크니는 그런 틈을 오히려 보는 방식의 일부로 다룬다. 눈은 카메라처럼 한 번에 딱 고정되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고, 가까이 보고, 다시 뒤로 물러난다. 그의 작업은 그 과정을 한 화면에 남기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아이패드 그림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
호크니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엔 조금 의외다. 유명한 원로 화가가 디지털 도구를 쓴다는 이미지가 흔하지 않아서다. 그런데 그의 작업 흐름을 보면 이상하지 않다. 그는 늘 새로운 도구가 보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궁금해한 사람이다. 붓, 카메라, 복사기, 팩스, 아이패드가 전부 같은 질문으로 연결된다. ‘이걸로 세상을 보면 뭐가 달라질까?’라는 질문이다.
아이패드 드로잉은 특히 생활 속 관찰과 잘 맞는다. 창밖의 나무, 계절이 바뀌는 들판, 아침 햇빛 같은 장면을 빠르게 붙잡을 수 있다. 물감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색을 바꾸는 속도도 빠르다. 물론 디지털이라서 가볍다는 편견이 생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매일 보고 다시 그리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호크니의 작업을 보면 도구보다 관찰의 끈기가 먼저 보인다.
전시나 작품 이미지를 볼 때 내가 쓰는 작은 기준
호크니 작품을 볼 때는 작가 설명을 먼저 외우려고 하면 오히려 재미가 줄었다. 나는 그냥 세 가지를 먼저 본다. 첫째, 그림 안에서 가장 넓은 색 면이 무엇인지. 둘째, 시선이 제일 오래 머무는 지점이 어디인지. 셋째, 사진처럼 보이는 부분과 그림처럼 보이는 부분이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이렇게 보면 작품이 조금 덜 어렵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수영장 그림에서는 물보라가 가장 눈에 띄지만, 실제로 화면의 분위기를 잡는 건 하늘과 건물의 평평한 면일 때가 많다. 인물 초상에서는 얼굴보다 의자, 바닥, 벽 색이 관계의 분위기를 만든다. 풍경화에서는 나무 한 그루보다 길이 휘어지는 방식이 더 오래 남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보면 호크니는 단순히 예쁜 색을 칠한 화가가 아니라, 우리가 장면을 기억하는 방식을 계속 실험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매력은 ‘밝다’는 말로만 끝나지 않는 데 있다. 그의 그림은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오래 보면 점점 이상한 지점이 보인다. 물은 물처럼 보이면서도 패턴 같고, 집은 집인데 무대 세트 같고, 풍경은 선명한데 기억 속 장면처럼 납작하다. 그래서 전시장에서든 화면 속 이미지로든 한 번쯤 천천히 보는 재미가 있다. 생활 속에서 색을 고르거나 사진을 찍을 때도, 내가 실제로 본 것과 기억한 것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