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다시 읽어봤더니, 예전엔 안 보이던 문장들이 걸렸다

얼마 전 책장을 뒤적이다가 낡은 『데미안』을 다시 꺼냈다. 학창 시절에는 괜히 어려운 책 같아서 밑줄만 잔뜩 긋고 넘어갔는데, 이상하게 지금 읽으니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싱클레어가 계속 흔들리는 모습이 예전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이 들어서 읽는 고전은 내용이 바뀌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이 바뀌어서 다른 책처럼 보이는 것 같다.
처음 읽을 때 왜 어렵게 느껴졌을까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191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분량만 보면 아주 두꺼운 책은 아니다. 번역본마다 다르지만 보통 250쪽 안팎이라 마음먹으면 하루 이틀 안에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페이지 수가 아니라 분위기다. 사건이 빠르게 몰아치는 소설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자기 안의 혼란을 계속 들여다보는 이야기라서 읽는 속도가 자꾸 느려진다.
나도 처음에는 “그래서 데미안이 대체 누구라는 거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친구 같기도 하고, 스승 같기도 하고, 싱클레어 안에 있는 또 다른 목소리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애매함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진다. 등장인물의 행동보다 상징과 감정이 앞에 나오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근데 다시 읽어보니 그 애매함이 이 책의 재미였다. 데미안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싱클레어가 믿고 있던 기준을 흔들어 놓는다. “착한 아이로 살면 안전하다”는 생각, “어른들이 말하는 세계가 전부다”라는 감각을 조금씩 깨뜨린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불편해진다. 내가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기준은 뭘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간다.
싱클레어의 불안이 생각보다 익숙했다
이 책에서 싱클레어는 크게 두 세계 사이에서 흔들린다. 하나는 밝고 안전한 집의 세계다. 부모님, 학교, 예의, 규칙 같은 것들이 있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어둡고 낯선 세계다. 거짓말, 욕망, 두려움, 죄책감 같은 것들이 섞여 있다. 어릴 때는 이 구도가 너무 극단적으로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꽤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회사나 학교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싶다가도, 나만 비겁한가 싶어지는 날도 있다.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끌려다니는 장면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협박 사건이 아니라, 약점을 잡힌 사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보여주는 장면처럼 읽혔다.
솔직히 이 부분은 읽으면서 조금 답답했다. 왜 빨리 말하지 못할까, 왜 도움을 청하지 못할까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제로 사람은 그렇게 깔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작은 거짓말 하나가 커지고, 들킬까 봐 더 숨기고, 그러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불어난다. 『데미안』이 오래된 소설인데도 여전히 읽히는 건 이런 감정의 흐름이 꽤 정확하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유명한 문장은 따로 떼어 읽으면 아깝다
『데미안』 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장이 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그 문장이다. 워낙 유명해서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문장만 따로 보면 약간 멋있는 자기계발 문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직접 읽어보면 느낌이 조금 다르다. 여기서 알은 그냥 편안한 껍질이 아니다. 자신을 보호해주지만 동시에 가두는 세계에 가깝다. 깨고 나온다는 것도 가볍게 도전하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기존의 나를 부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이 문장은 희망적이면서도 꽤 무겁다.
나한테는 이 지점이 제일 흥미로웠다. 우리는 보통 변화라는 말을 좋게만 쓴다. 새 출발, 성장, 도전 같은 단어와 붙여서 말한다. 그런데 실제 변화는 생각보다 지저분하다. 익숙한 관계가 어색해지기도 하고, 전에는 괜찮았던 일이 갑자기 불편해지기도 한다. 『데미안』 속 성장도 그런 쪽에 가깝다. 반짝이는 성공담이 아니라, 자기 안의 어두운 부분까지 보고 나서야 조금 움직이는 과정이다.
지금 읽으면 좋은 사람과 조금 안 맞을 사람
『데미안』은 누구에게나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빠른 전개, 선명한 사건, 통쾌한 해결을 기대하면 답답할 수 있다. 데미안이라는 인물도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싱클레어의 감정도 반복해서 흔들리기 때문에, 어떤 독자에게는 지나치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지금 자신의 방향을 자주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붙잡아볼 만하다. 특히 “나는 왜 남들이 괜찮다는 길에서 자꾸 답답하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싱클레어의 혼란이 완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고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너무 반듯하게 앉아서 읽을 필요도 없다. 이해 안 되는 문장은 넘어가고,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문장만 표시해도 충분하다.
- 분량은 부담스럽지 않지만 문장은 천천히 읽히는 편이다.
- 줄거리보다 심리 변화와 상징을 따라가는 책에 가깝다.
- 청소년기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어른이 읽을 때 더 씁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 유명 문장만 보기보다 앞뒤 맥락을 같이 읽을 때 힘이 살아난다.
내 책장에 다시 꽂아두게 된 이유
이번에 다시 읽고 나서 『데미안』을 예전처럼 어려운 책으로만 보지는 않게 됐다. 물론 여전히 모든 장면이 선명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피스토리우스나 에바 부인이 나오는 부분은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꽤 갈릴 것 같다. 나도 어떤 대목은 아름답다기보다 몽롱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 책을 덮고 나면 몇몇 장면이 뒤늦게 떠오른다. 싱클레어가 겁먹고 숨던 모습, 데미안이 조용히 던지던 말,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느낌 같은 것들이다. 생활 노하우처럼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답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가끔 내 선택이 너무 남의 기준에 맞춰져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한 번에 완벽히 이해하려고 읽기보다, 몇 년 간격으로 다시 꺼내는 쪽이 더 잘 맞는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밑줄 친 문장이 멋있어서 좋았고, 지금은 싱클레어의 흔들림이 솔직해서 좋다. 다음에 또 읽으면 아마 데미안보다 다른 인물이 더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읽는 사람이 변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책이라면, 책장 한 칸을 차지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