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나서, 내가 괜히 초조했던 이유를 조금 알았다

괜히 뒤처지는 느낌이 들 때 꺼내 본 책
얼마 전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보다가 괜히 기분이 가라앉은 적이 있다. 누군가는 새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올리고, 누군가는 집을 샀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긴 휴가를 떠난 사진을 올렸다. 사실 그 사람들 삶의 전체를 아는 것도 아닌데, 딱 그 순간에는 나만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생각난 책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맞는 말이네” 정도로 지나갔는데, 다시 펼쳐 보니 느낌이 꽤 달랐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불안은 단순히 걱정이 많다는 뜻이 아니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내가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계속 확인하고 싶어지는 상태에 가까웠다.
솔직히 이 설명이 조금 찔렸다. 내 불안은 통장 잔고나 업무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그럴듯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예전 친구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마음, 이런 것들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불안은 생각보다 생활형이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불안을 아주 거창한 철학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일상에서 자주 겪는 비교, 체면, 인정 욕구를 아주 집요하게 파고든다. 예를 들어 연봉이 300만 원 올라도 옆자리 동료가 700만 원 올랐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이 복잡해진다. 객관적으로는 내 형편이 나아졌는데도 마음은 덜 좋아질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절대적인 조건만 보고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변 사람과의 상대적 위치를 계속 의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근데 이게 참 피곤하다. 밥 한 끼 잘 먹고 와도 누군가의 더 멋진 식당 사진을 보면 갑자기 내 저녁이 초라해 보인다.
책을 읽으며 내가 해본 작은 실험이 있다. 일주일 동안 SNS를 볼 때마다 “지금 내가 부러워하는 게 정확히 뭐지?”라고 적어봤다. 의외로 답은 단순했다. 돈 자체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이 부러웠고, 좋은 직함보다 인정받는 느낌이 부러웠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건 물건이나 성과 하나가 아니라, 그 뒤에 붙어 있는 사회적 의미에 가까웠다.
비교를 끊기보다 비교의 기준을 의심해봤다
사실 비교를 아예 하지 말자는 말은 생활 속에서 잘 안 먹힌다. 사람은 계속 본다. 옆집 인테리어도 보고, 동료의 승진도 보고, 친구의 여행 사진도 본다.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더 신경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비교를 없애기보다 기준을 의심하는 쪽이 조금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예를 들어 누군가 30대 중반에 자가를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에는 바로 내 상황과 비교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람의 소득, 가족 지원, 지역, 대출 규모, 생활 방식까지 다 모르는 상태라는 걸 같이 떠올린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 하나만 가지고 내 삶 전체를 채점하는 건 꽤 불공정한 방식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도 비슷한 방향을 보여준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성공의 기준이 사실은 시대와 사회가 만든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시대에는 명예가 중요했고, 어느 시대에는 신앙이 중심이었고, 지금은 돈과 직업적 성취가 유난히 크게 보인다. 그러니 지금 내가 조급한 이유가 내 안에서만 나온 건 아닐 수 있다.
내가 실제로 해본 작은 방식들
- SNS를 본 뒤 기분이 나빠졌다면, 누구와 무엇을 비교했는지 한 줄로 적었다.
- 부러운 장면을 봤을 때 그 뒤에 있을 비용, 시간, 스트레스도 같이 상상했다.
- 내가 진짜 원하는 감정이 안정감인지, 인정인지, 자유인지 따로 구분했다.
- 하루에 한 번은 남에게 보여주기 애매하지만 나한테는 괜찮았던 일을 기록했다.
이 방식들이 불안을 단번에 없애주지는 않았다. 다만 막연한 초조함이 조금 구체적인 문장으로 바뀌었다. “나는 인생이 망한 것 같아”가 아니라 “나는 지금 또래보다 늦어 보일까 봐 불안하구나”가 되는 식이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불안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 있었던 건 거리 두기였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건 성공한 사람을 보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 자동으로 내 점수가 깎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다른 사람의 성취와 내 삶의 가치는 같은 저울 위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이 바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물리적인 거리도 조금 만들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SNS를 보는 습관을 줄였고, 자기 전에는 뉴스나 커뮤니티 대신 종이책 몇 쪽을 읽었다. 시간으로 치면 하루 20분 정도의 차이였는데, 체감은 꽤 컸다. 남의 속도에 접속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내 하루가 덜 시끄러워졌다.
또 하나는 돈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보는 것이었다. 막연히 “돈이 없어서 불안하다”고 느끼면 답이 없다. 그래서 월 고정비, 비상금, 앞으로 3개월 안에 필요한 지출을 숫자로 적어봤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내가 뭘 걱정하는지는 보였다. 철학책을 읽고 가계부를 펼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둘이 의외로 잘 맞았다.
알랭 드 보통 불안을 읽고 남은 생각
<불안>은 마음을 편안하게 달래주는 책이라기보다, 내가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지 옆에서 조용히 설명해주는 책에 가까웠다. 읽고 나면 갑자기 초연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나도 여전히 누군가의 좋은 소식을 보고 잠깐 멈칫할 때가 있다.
다만 이제는 그 감정을 전보다 덜 믿는다. 부러움이 올라오면 “이건 진짜 욕구일까, 아니면 사회가 멋지다고 말한 장면을 따라가고 싶은 걸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한다. 그 짧은 틈이 생긴 것만으로도 꽤 달라졌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는다고 생활의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내가 유난히 예민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비교가 쉬운 세상에서 꽤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던 거니까. 요즘은 그 흔들림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흔들릴 때마다 기준을 다시 만져보는 쪽이 나한테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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