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화학 색연필로 오래된 도안 칠해봤더니 손이 덜 피곤했다

얼마 전 서랍을 뒤지다가 예전에 사둔 컬러링북을 발견했는데, 문제는 색연필이 거의 다 굴러다니는 낱개뿐이었다는 점이다. 빨강은 있는데 분홍이 없고, 초록은 두 개나 있는데 피부색으로 쓸 만한 색은 없었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다시 고른 게 지구화학 색연필이었다. 어릴 때 학교 준비물로 자주 보던 그 이름이라 괜히 반가웠고, 솔직히 비싼 전문가용을 살 정도로 진지한 취미는 아니라서 더 손이 갔다.
직접 써보니 지구화학 색연필은 화려하게 감탄이 나오는 타입이라기보다, 일상에서 부담 없이 꺼내 쓰기 좋은 쪽에 가까웠다. 아이 숙제, 간단한 그림, 다이어리 꾸미기, 컬러링북 한두 장 정도라면 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다만 기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 써보면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적어본다.
처음 잡았을 때 느낌은 꽤 익숙했다
지구화학 색연필을 잡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이 느낌 알지”였다. 연필 몸통이 가볍고, 손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종이에 색이 올라갔다. 엄청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고급 색연필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뻑뻑해서 손목이 아픈 편도 아니었다.
저는 보통 A4 복사용지, 일반 스케치북, 컬러링북 종이에 각각 칠해봤다. 복사용지에서는 색이 조금 얇게 올라가고, 스케치북에서는 입자가 더 잘 잡혔다. 컬러링북 종이에서는 가장 무난했다. 특히 넓은 면을 칠할 때 너무 진하게 누르지 않고 여러 번 덧칠하면 색이 고르게 보였다.
발색은 선명하지만 과하게 진하진 않다
지구화학 색연필의 발색은 초등학생 준비물로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빨강, 파랑, 초록 같은 기본색은 눈에 잘 들어왔고, 노랑이나 살구색 계열은 종이에 따라 조금 연하게 느껴졌다. 강한 발색을 원하면 손에 힘을 줘야 하는데, 그러면 종이 결이 눌리고 색연필 심도 빨리 닳는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에 진하게 칠하는 것보다 2~3번 나눠 칠하는 방식이 더 나았다. 예를 들어 나뭇잎을 칠할 때 연두를 먼저 깔고, 초록을 가장자리 쪽에 더해주면 생각보다 입체감이 생겼다. 비싼 색연필처럼 색이 녹아들 듯 섞이는 느낌은 아니지만, 생활용으로는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아이 숙제용과 어른 취미용 사이 어딘가
지구화학 색연필을 사는 사람은 대개 두 부류일 것 같다. 하나는 학교 준비물로 사는 경우, 다른 하나는 가볍게 취미를 시작하려는 경우다. 이 제품은 딱 그 사이에 있다. 너무 비싸지 않고, 색 구성도 기본적인 그림을 그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실패해도 부담이 적다.
다만 섬세한 인물화나 진한 명암 표현을 기대하면 아쉬움이 생길 수 있다. 피부 표현처럼 색을 여러 겹 쌓아야 하는 그림에서는 색의 깊이가 제한적으로 느껴졌다. 반대로 다이어리에 작은 아이콘을 그리거나, 학습지 그림을 색칠하거나, 컬러링북 패턴을 채우는 정도라면 오히려 과하지 않아서 쓰기 편했다.
- 학교 준비물로는 가격과 사용성이 무난한 편이다.
- 컬러링북 입문용으로 쓰기 좋다.
- 전문가용처럼 부드러운 블렌딩을 기대하면 아쉽다.
- 진한 색보다 중간 톤을 여러 번 쌓을 때 결과가 더 낫다.
심 부러짐과 깎는 느낌은 꽤 중요했다
색연필은 발색만큼이나 깎을 때 스트레스가 중요하다. 아무리 색이 예뻐도 깎을 때마다 심이 뚝뚝 부러지면 손이 잘 안 간다. 제가 써본 지구화학 색연필은 평범한 연필깎이로 깎았을 때 크게 문제는 없었다. 다만 너무 날카롭게 오래 깎으면 심 끝이 약해져서 칠하다가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저는 끝을 아주 뾰족하게 만들기보다 살짝 둥글게 남기는 쪽이 편했다. 넓은 면을 칠할 때도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선을 따야 할 때만 조금 더 날카롭게 깎으면 된다. 작은 차이인데, 이렇게 쓰면 색연필이 덜 닳고 손도 덜 피곤했다.
보관은 생각보다 차이를 만든다
색연필을 책상 위 컵에 꽂아두면 편하긴 한데, 몇 번 떨어뜨리면 내부 심이 손상될 수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깎을 때 계속 부러지는 경우가 생긴다. 지구화학 색연필도 마찬가지라서, 가능하면 원래 케이스에 넣어두는 게 낫다.
특히 아이가 쓰는 색연필이라면 바닥에 굴러다니기 쉽다. 이럴 때는 색상 순서대로 정돈하기보다 자주 쓰는 색과 덜 쓰는 색을 나눠두는 방식이 실용적이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검정처럼 자주 쓰는 색은 앞쪽에 두면 찾는 시간이 줄어든다.
어떤 사람에게 잘 맞을까
지구화학 색연필은 “제대로 그림을 시작해야지”라는 마음보다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쓰고 싶다”는 사람에게 잘 맞았다. 가격 부담이 낮고, 구하기 쉽고, 기본 색을 다루기 편하다. 문구점에서 바로 살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은근히 크다. 급하게 준비물을 챙겨야 할 때 인터넷 배송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반면 색감에 아주 예민하거나, 부드러운 그라데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전문가용 색연필을 보는 편이 낫다. 지구화학 색연필은 생활형 도구에 가깝다. 냉장고에 붙일 메모 그림, 아이와 같이 하는 색칠 놀이, 여행 다이어리 한쪽에 남기는 작은 그림 같은 데서 더 편하게 빛난다.
- 가볍게 색칠 취미를 시작하는 사람
- 아이 학교 준비물을 고르는 보호자
- 다이어리나 노트 꾸미기를 자주 하는 사람
- 비싼 미술용품을 사기 전 손풀기용이 필요한 사람
써보니 가장 좋은 사용법은 힘 빼기였다
지구화학 색연필을 쓰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힘을 많이 줄수록 결과가 꼭 좋아지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연하게 깔고,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덧칠하는 게 훨씬 보기 좋았다. 종이도 덜 상하고 색도 탁해지지 않았다.
작은 꽃 그림을 칠할 때도 처음부터 빨강을 세게 누르면 납작한 느낌이 났다. 그런데 분홍을 먼저 깔고 빨강을 꽃잎 안쪽에만 더해주니 훨씬 자연스러웠다. 초록 잎도 마찬가지였다. 연두를 바탕으로 두고 진초록을 잎맥 주변에 얹으면 간단한데도 완성도가 올라갔다.
그래서 제 기준에서 지구화학 색연필은 엄청 특별한 제품이라기보다, 생활 속에서 자주 꺼내 쓰기 좋은 색연필이었다. 비싼 도구를 모셔두는 것보다 책상 한쪽에 두고 자주 쓰는 쪽이 더 잘 맞는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보다, 빈칸을 색으로 채우는 재미를 느끼고 싶을 때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